
/ 돌에 대한 기억 1
돌멩이.
돌멩이는 혀끝을 윗니 뒤쪽에 가져다 대면 단단하게 딛고 나오는 'ㄷ' 발음으로 시작한다.
곧이어 따라오는 'ㄹ'이 그 소리를 감싸 낸다.
마치 유속이 느린 강물이 그 아래 자갈들을 어루만지며 흐르는듯한 세기의 부드러움이다.
입술을 뻐끔뻐끔 움직이며 이어지는 '멩'과 '이'.
이 발음들이 귀여워 조용히 읊조리는 재미가 있다.
돌멩이, 돌멩이, 돌멩이, 돌멩이....
바위, 돌, 자갈, 모래, 흙.
돌을 떠올리면 따뜻함이 제일 먼저 생각난다.
이끼와, 차가움과, 축축함이 아닌 햇빛을 가득 머금어 따뜻한 바위, 따뜻한 돌, 따뜻한 모래, 따뜻한 흙.
계곡 하류의 양지바른 곳에 넓게 펼쳐진 내방만큼이나 커다란 반석.
내리쬐는 태양의 기운을 가득 머금은 돌.
그 뜨거움에 바싹 말라 따스하고 큰 바위.

분출하고 싶은 상태가 되면 나는 숨 돌릴 틈도 없이 산 정상에 올라
아무 바위 위에 팔과 다리를 대자로 뻗고는 드러눕는 상상을 한다.
그 따뜻함이 뭉근하게 등을 타고
온몸으로 퍼지는 기분 좋은 상상.
열심히 땀 흘리며 산 정상에 오른 뒤,
오로지 올라간다는 행위에만 목적을 둔 뒤,
에너지를 한껏 분출하고 쏟아 낸 뒤,
따뜻한 바위 위에서 다시 새로운 기운을 채워 돌아가는 것.
그게 내가 처음으로 기억하는 '돌'에게서 에너지를 느낀 경험.

바윗돌 깨뜨려 돌덩이
돌덩이 깨뜨려 돌멩이
돌멩이 깨뜨려 자갈돌
자갈돌 깨뜨려 모래알

/ 돌에 대한 기억 2
아홉 살 때 엄마는 새로 산 내 흰색 옷을 다시 주문했으니 나더러 가서 찾아오라 했다.
난 소라색이 잘 어울리니까 아무래도 소라색이 좋겠다며.
나는 그 발음이 낯설어 몇 번을 되물었다.
소라색? 소라? 소라색? 하늘색? 하늘색이 소라색이야?
나는 소라색이 잘 어울려, 하늘색은 내 색이야.
그렇게 오랜 시간 새벽과 바다의 빛깔을 사랑하던 나는, 얼마 전 낯선 경험을 한다.
연한 분홍색에 강한 끌림을 느꼈다.
처음엔 요가 매트였고, 그다음은 요가복이었다.
점점 푸른빛으로 가득하던 옷장은 연분홍색의 옷들로 바뀌어갔다.
여기서 멈출 줄 알았다.
가장 안 좋아하고, 평생 관심조차 없던 노란색에 눈길이 가기 시작하더니
최근엔 태어나 처음으로 옅은 레몬색 니트를 샀다.
잘 입고 다니는 중이다.

분홍색을 조금씩 수집하며 다닐 때쯤 사라가 원석 가게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처음 만난 루벨라이트.
신기하게도 이 돌은 사랑, 수용, 연민을 상징한다고.
애인과의 관계가 한층 더 깊어지는 시기였고,
사랑하는 것들이 많은 때였다.
첫 돌멩이를 사랑하는 연인에게 선물 받고 싶었다.
애인은 선뜻 결제해 주었고, 그렇게 내 손에 들어온 내 첫 원석 루벨라이트.

/ 돌에 대한 기억으로
산 정상에 올라 온몸으로 느낀 바위에 대한 기억으로.
사랑에 대한 감수성이 한껏 예민해졌을 때 루벨라이트를 만난 기억으로.
평생 외면하던 노란색을 좋아하게 된 기억으로.
나는 계속해서 감응하며 살래요.
어떤 것이 내 눈에 들어오는지,
나는 누구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게 되는지,
나는 어떤 이가 사랑받기를 원하는지.
반대로
어떤 이의 부르짖음이 내 귀에 들리지 않는지
어떤 이의 슬픔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지
어떤 이가 사랑받지 못하고 있는지
돌에 대한 기억으로
나는 계속해서 감응하며 살래요.
나마스떼🕯